극단적 미니멀리즘

극단적 미니멀리즘과 옷장의 재구성

memojin21 2025. 6. 28. 23:55

옷장을 열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정리된 듯 보였지만 매일 입는 옷은 늘 한정되어 있었고,
유행이 지나거나 어울리지 않는 옷들도 꽤 많았으며,
‘언젠가 입겠지’라는 핑계로 남겨둔 옷들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옷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한참을 들여다봐도 입고 싶은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저는 옷장 정리가 단순한 수납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저는 생활 전반의 물건들을 정리해왔습니다.
주방, 거실, 책상 위까지는 어렵지 않게 비울 수 있었지만,
유독 옷장 앞에서는 멈칫하게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옷이 단지 ‘물건’이 아니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고, 또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옷장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구성하는 마음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옷을 남길 것인가’보다
‘어떤 나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그 물음은 생각보다 깊었고,
저는 결국 옷장의 구조뿐 아니라 제 삶의 태도까지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극단적 미니멀리즘과 옷장의 구성

줄이는 게 아니라, 남기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옷장을 정리할 때 처음에는
입지 않는 옷을 빼는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6개월 이상 입지 않은 옷, 불편해서 손이 잘 안 가는 옷,
색상이나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는 옷들을 꺼내면서
‘왜 이 옷을 샀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특히 할인이라는 말에 혹해 구매했던 옷,
유행에 맞춰 샀지만 금세 마음에서 멀어진 옷들,
기분 전환을 위해 질렀지만 두세 번 입고 끝났던 옷들을 바라보며
제가 얼마나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옷을 선택해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 소비는 옷장 속 공간뿐 아니라
마음의 공간도 불필요하게 채워왔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리를 멈추고 기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 옷을 남길까?’가 아니라
‘이 옷을 입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이 옷은 나를 단순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옷의 수는 생각보다 많이 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긴 이유’가 분명해졌고,
그 기준을 통해 제 옷장은 단순히 비워진 게 아니라
저를 지지해주는 작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옷을 고르는 시간이 줄었고,
거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안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그건 옷의 수보다 훨씬 큰 변화였습니다.

 

계절을 다시 느끼고, 일상을 나답게 정리하기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옷장 정리는 계절을 의식하는 훈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사계절 옷을 모두 꺼내 놓고
그 안에서 매일 선택하느라 피로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계절에 따라 옷장을 정기적으로 정돈하고
나의 생활 패턴에 맞춰 옷의 구성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린넨과 면소재 옷 위주로
자주 입는 상의 45벌,하의 23벌,
외출용 원피스 12벌 정도로 구별합니다.

겨울에는 67벌, 두꺼운 니트는 최대 3벌,
외투는 2벌만 두고 돌려 입습니다.
옷이 적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손에 익은 옷들 덕분에
매일의 선택이 편안해졌습니다.

또한 운동복, 잠옷, 실내복, 외출복을
목적별로 구분해서 배치하면서
하루의 시간 흐름이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퇴근 후 집에서도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날이 많았는데,
지금은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하루의 긴장이 풀리고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사소한 정리는
단순히 옷장의 문제를 넘어서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정리된 옷장이 주는 정적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고,
옷이 주는 감각이 나의 하루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저는 매일 조금씩 확인하고 있습니다.

옷장을 정리하며 나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입던 옷을 꺼내며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샀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불안이나 충동을 다시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옷은 이젠 입지 않지만 쉽게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옷이 아니라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입사하던 날 입었던 셔츠,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걸었던 날의 원피스,
무언가를 끝내고 나를 다잡기 위해 샀던 검정 니트.
그 옷들은 제게 물건 이상의 것이었고,
버리는 대신 따로 담아두며
감정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던 선택, 지나친 욕심, 가벼운 판단 모두
그 당시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던 모습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
그 인정이 오늘의 저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 옷장은 예전보다 확실히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담겨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내가 나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옷들로만 구성된 공간.
그 안에서 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오늘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조용히 꺼내 입습니다.